"작업중지권 행사한 노조지부장 징계는 부당"…첫 대법 판단

입력 2023-11-09 17:33   수정 2023-11-09 21:17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근로자에 대해 근무지 무단이탈 등을 이유로 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피가 필요할 만큼 위험하다고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근로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정직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16년 7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전 7시 56분과 9시 30분에 세종시 부강면 금호리 부강산업단지에 있는 KOC솔루션 공장에서 화학물질인 티오비스가 약 300ℓ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티오비스는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상온에 노출될 경우 분해되면서 유독성 기체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킬 수 있다.

같은 날 오전 8시 30분 지역 소방본부는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50m 거리까지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다. 이어 9시 20분께는 사고지점에서 반경 500m~1㎞ 거리에 있는 금호 1·2·3리 마을 주민들에게 창문을 폐쇄하고 외부 출입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부강산업단지 관리사무소장은 통제선 내에 있는 6개 공장 근로자들에게도 대피하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사고지점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이 사건 회사에서는 근로자들에 대한 대피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전충북지부 콘티넨탈 지회장인 A씨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무렵 다른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용노동부와 회사에 조치를 요구했다. 오전 10시에는 회사와 대책을 논의했고, 당시 근로감독관은 대피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소방본부에 전화를 걸어 누출된 물질의 유해성과 대피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질문했으나 소방본부는 '이미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A씨는 작업장을 이탈하면서 당시 작업 중이던 금속노조 조합원 28명에게도 대피하라고 말했다. A씨는 사고 이틀 뒤 회사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회사는 A씨가 조합원 28명과 함께 작업장을 무단으로 이탈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에 A씨는 무효 확인 소송으로 맞섰다.

1·2심은 모두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사고 당시 피고 회사의 직원들에 대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는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해 객관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상황인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도 거부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노조 활동으로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측면에서도 원고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적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황화수소의 분산으로 인한 피해 범위를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고,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 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며 "실제로 사고가 발생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오심,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고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피고 회사 작업장이 유해 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고는 근로자이자 노동조합의 대표자로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대피하면서, 노동조합에 소속된 피고 회사의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대피를 권유하였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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